경상북도 경주시 일정로에 자리한 국립경주박물관은 신라 천 년의 수도였던 경주의 역사적 깊이를 그대로 담아내는 대표적인 국립 역사박물관이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속기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1975년 8월 20일 공식 발족한 이래 신라 문화 연구와 보존, 전시의 핵심 역할을 수행해 왔다. 관장은 고위공무원단 나등급의 학예연구관이 맡고 있어 전문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갖춘 기관이다.
국립경주박물관의 뿌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13년, 경주고적보존회가 조선시대 경주부 관아 건물을 활용해 ‘진열관’을 열면서 경주 지역 문화재 전시가 처음 시작되었다. 이후 1926년에는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 분관으로 편제되었고, 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7일 국립박물관 경주분관으로 재탄생했다. 한국 근대사와 함께 박물관의 지위도 변화해 온 셈이다.
본격적인 ‘국립경주박물관’의 시대는 196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다. 1961년 신관 건립을 시작으로, 1968년에는 인왕동에 새로운 박물관 건물이 세워졌다. 이어 1975년 5월, 지금의 박물관 위치인 인왕동으로 전체 시설을 이전하며 박물관 규모와 기능이 크게 확장되었다. 당시 이전 과정은 경주 시민에게도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었다. 특히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을 옮기던 날은 많은 시민이 직접 참여해 기억에 남는 지역 행사로 전해지고 있다. 그해 신축된 본관(현재의 신라역사관)과 별관(지금의 특별전시관), 종각은 경주박물관의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이 건물들을 설계한 이는 한국 건축계의 중요한 인물로 꼽히는 이희태(1925~1981)다. 경회루에서 영감을 받아 외부에 일정 간격의 기둥을 두른 누각형 형태가 특징이다.
이후 박물관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계속 확장되었다. 1982년에는 김수근(1931~1986)의 설계로 ‘제2별관(월지관)’을 신축했다. 안압지(월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보관·전시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건물은 전통 창고 형태에서 모티프를 얻어 벽돌과 목재, 기와를 활용한 단정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1987년에는 국은기념실이 문을 열었으며, 2002년에는 미술관이 신축되었다. 미술관은 이상은(1954~ )이 설계했으며, 전시뿐 아니라 교육·연구·관리 기능을 통합한 복합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박물관은 관람 환경 개선과 교육 기능 강화에 집중했다. 2004년에는 수묵당을 신축하고, 이듬해인 2005년 1월 31일 어린이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세대별 교육 접근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2013년에는 신라역사관의 내진 보강이 이루어졌고, 2015년에는 특별전시관이 개·보수되면서 전시 품질이 한층 향상되었다.
최근에는 박물관의 외연을 넓히는 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박물관 내 천년미소관은 2025년 11월,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체험전시관’이라는 새로운 컨셉으로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이 공간은 과거 APEC 경주 정상회의에서 한·미 정상회담과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던 상징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전통예술과 디지털 체험을 결합한 문화 콘텐츠와 다양한 국제 교류 전시가 함께 이루어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과거의 역사적 무게와 미래지향적 전시 방식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국립경주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신라 문화유산의 보존과 전시다. 매장문화재가 풍부한 경주의 특성상, 박물관은 유물 수집뿐 아니라 조사·연구 면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왔다. 박물관이 보유한 유물은 13만 점이 넘으며, 특히 신라와 관련된 고고학 유물은 국내에서 가장 방대하다. 대표적인 전시물로는 금관, 토기, 청동기, 장신구류와 더불어 성덕대왕신종이 있다. 신라의 미감을 압축해 보여주는 유물들이 실물 중심의 전시로 구성되어 있어 관람객은 신라 시대로 걸어 들어간 듯한 경험을 얻게 된다.
박물관의 공간 구성 또한 특징적이다. 신라시대 생활·문화·예술을 시대별로 분류해 보여주는 ‘신라역사관’은 경주박물관의 중심 전시 공간이며, 특별전시관에서는 다양한 주제로 기획전이 열려 신라뿐 아니라 한국 고대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시각을 제시한다. 월지관에는 안압지 출토 유물들이 집중 전시되어 있어, 신라인의 삶과 미의식을 구조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공간이다. 미술관과 어린이박물관은 세대별 접근성을 고려한 전시·체험 구성이 이루어져 있어 남녀노소 모두가 신라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유물의 양 때문이 아니다.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과 다름없다. 이러한 도시의 특성과 맞물려 국립경주박물관은 유물을 단순히 수집·보존하는 단계를 넘어, 지역 문화유산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며 경주의 역사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핵심 기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매년 85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하는 것도 이러한 박물관의 독특한 위상을 잘 드러내는 지표다.
1975년 개관 이후 국립경주박물관은 늘 변화의 흐름 속에서 시대에 맞는 전시 방식과 교육 전략을 모색해 왔다. 전시 시설 확장, 어린이 교육 강화, 국제 교류 전시 확대, 그리고 2025년 예정된 문화체험전시관 개편까지—박물관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문화 플랫폼으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신라 왕경의 중심에서 수천 년의 시간을 간직한 유물들과 함께, 국립경주박물관은 앞으로도 한국 고대문화 연구와 디지털 기반 문화콘텐츠 발전의 중심 역할을 수행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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