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는 사실 처음부터 세종문화회관이 있던 곳이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이 일대에 경성부민관이 서 있었고, 지금 서울시의회 건물로 쓰이고 있는 그 건물이 당시에는 종합 예술 시설 역할을 맡고 있었다. 광복 이후에는 시민회관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다. 1961년 문을 연 시민회관은 공연과 집회가 열리는 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이었고, “도심 한복판의 공공 문화홀”이라는 상징성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72년 말, 시민회관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서울 중심에 변변한 대형 공연장이 하나도 없는 공백 상태가 된 것이다. 이 공백을 단순히 새 건물 하나로 메우느냐, 아니면 아예 새로운 수준의 문화 인프라를 만들 것이냐를 두고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서울시는 “시민회관 대체”를 넘어 “대규모 종합 공연장” 건립이라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결과물이 바로 세종문화회관이다.
공사는 1974년 1월에 시작됐고, 1978년 4월 14일 완공과 동시에 문을 열었다. 개관 당시 기준으로 대극장 좌석 수는 3,800석이 넘었고, 중극장 역할을 하는 소극장도 500석대 규모로 갖춰져 있었다. 당시로서는 국내 최대급 규모의 공연장이었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언젠가 남북이 통일된다면 이곳을 회의장으로 쓸 수도 있다”는 상상까지 담아 크기를 키웠다는 이야기도 따라붙는다. 단순히 공연장 이상의 정치·상징적 역할까지 염두에 둔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종문화회관의 위치는 조금씩 달라진다. 1980년대 들어 예술의전당처럼 새로운 복합 문화공간이 등장했고, 다른 공연장들도 경쟁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 하면 세종문화회관 하나”였던 시절은 서서히 지나가고, 서울시 직영 체제의 경직된 운영 방식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다. 무대는 좋고 장소는 좋은데, 프로그램 운영과 기획력이 시대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이런 비판 끝에 1999년, 세종문화회관은 재단법인 형태의 공연장으로 독립하면서 운영 구조를 크게 손보는 변화를 선택한다.
세종문화회관은 지어진 그대로 박제된 공간이 아니다. 2000년대 이후로도 크고 작은 리모델링과 확장을 통해 조금씩 다른 얼굴을 갖게 된다. 먼저 노후화된 대극장은 2003년부터 약 1년 2개월 동안 대대적인 보수·개축 공사를 겪는다. 단순히 좌석만 새로 깔고 벽지만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무대 시스템, 객석 동선, 음향 환경까지 전반을 손보는 작업이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같은 건물인데 확실히 달라졌다”고 느낄 정도의 변신이었다.
2006년에는 실내악 전용 공연장인 세종체임버홀이 문을 열었다. 원래 이 공간은 각종 회의와 강연이 열리던 컨벤션센터였지만, 아예 콘셉트를 바꿔 어쿠스틱 공연에 특화된 홀로 재탄생시켰다. 전체를 하나의 울림통처럼 설계해 작은 소리도 또렷하게 전달되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실내악, 독주회, 독창회 같은 공연에서 특히 진가를 발휘하는 공간이다.
소극장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리모델링을 거친 뒤 2007년 세종 M씨어터라는 이름으로 재개관하면서, 무대 장비, 음향, 조명, 객석, 로비와 편의시설까지 전면 교체됐다. “옛 소극장 리뉴얼”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새로운 공연장이 하나 더 생겼다고 봐도 될 정도의 변화였다. 이 시기부터 세종문화회관은 대극장 중심이 아니라, 여러 규모의 공연장이 서로 역할을 나눠 갖는 구조로 바뀌기 시작한다. 같은 해 문을 연 세종예술아카데미는 공연장을 벗어나 예술 교육까지 담당하는 플랫폼 역할을 맡게 된다. 음악·영화·미술·건축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주제로 한 대중 강좌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공간은 본관만 있는 것도 아니다. 삼청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별도의 공간이 또 하나 있다. 이곳은 한때 대통령 비밀 안가로 쓰이던 장소였는데, 2001년 전통예술 공연장 겸 문화공간으로 개축되어 일반에 공개됐다. 현재까지도 세종문화회관이 맡아 전통 공연과 행사 등이 열리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다만 2005년부터 2009년 사이에는 파라다이스 그룹이 운영권을 맡아 민간 공연장처럼 운영된 적도 있고, 그 이후 다시 세종문화회관 체제로 돌아왔다.
세종문화회관 앞 도로에는 조금 독특한 상징물도 있다. 전국 시·군 사이의 거리를 계산할 때 기준이 되는 ‘도로원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실제로 거리 측정의 기준점이 되는 지점은 교보빌딩 앞 세종대로 사거리 한가운데,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 위에 있다. 그곳은 조형물을 세울 수 없는 위치라 도로 바닥에 동판 표식만 박아두고, 기준점에 대한 설명과 상징적인 기념 구조물은 세종문화회관 앞에 따로 세워 둔 것이다. 서울에서 다른 지역까지 몇 km라고 표기될 때 기준이 되는 ‘0km’가 이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문화적 상징과 물리적 기준점이라는 이중 역할을 한다.
세종문화회관의 상징적인 공간을 꼽으라면 역시 세종대극장을 빼놓을 수 없다. 1층부터 3층까지 좌석이 층층이 이어져 있고, 총 3,022석 규모의 객석을 갖춘 메인 무대다. 클래식 음악, 오페라, 뮤지컬, 대형 무용 작품까지 웬만한 장르는 모두 수용 가능한 종합 예술 공간이다. 1·2층 객석 의자와 3층 벽면에는 LCD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어, 공연 자막이나 영상 정보를 송출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외국어 대사가 많은 오페라, 번역이 필요한 해외 작품을 볼 때 관객이 내용을 따라가기 훨씬 수월하다. 음향 시스템 역시 최신 장비와 공간 설계가 결합된 구조로 되어 있어, 객석 위치에 따른 소리 차이를 최소화하는 데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다.
무대 위쪽에는 배튼이 100개가 넘게 설치되어 있어서 조명, 무대 세트, 장치 등을 빠르게 바꾸는 데 활용된다. 이 덕분에 공연 전환이 많은 작품도 비교적 수월하게 소화할 수 있고, 세종대극장은 자연스럽게 다목적 대형 공연장의 역할을 맡게 됐다.
중극장 역할을 하는 세종 M씨어터는 좀 더 밀도 높은 공연을 담는 그릇에 가깝다. 1~3층 약 600석 내외의 규모로, 관객 입장에서는 무대와 너무 멀지도, 지나치게 가깝지도 않은 거리감이라 감정 몰입이 잘 되는 편이다. 사이드 발코니석을 새로 만든 것도 이 공연장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요소다. 정면에서만 무대를 보는 게 아니라 측면에서도 내려다보는 시야가 생기면서, 같은 작품이라도 관객이 선택할 수 있는 관람 경험이 달라진다. 무대 장치 변환이 잦고 음악·무용·연기가 동시에 중요한 뮤지컬이나 연극, 중규모 오페라 공연이 이곳에 잘 어울린다.
실내악 전문홀인 세종체임버홀은 완전히 다른 결의 공간이다. 원래 회의와 강연이 열리던 장소였던 만큼, 처음에는 ‘컨벤션센터’ 성격이 강했지만, 리모델링을 거치며 “음악을 위한 방”으로 다시 설계되었다. 천장과 벽, 객석 구조 모두 작은 음량의 악기도 또렷하게 들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피아노 독주, 현악 4중주, 성악 독창, 소규모 앙상블 공연에서 장점을 제대로 발휘한다. 단순히 “작은 홀”이 아니라, 섬세한 소리를 중심에 두고 설계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대극장과는 아예 다른 개성을 가진다.
2018년 개관한 세종 S시어터는 실험이 가능한 소극장이다. 개관 40주년을 맞아 새롭게 추가된 이 공연장은 관객과 무대 사이의 경계를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약 300석 내외의 가변형 구조를 갖추고 있어, 연출 의도에 따라 객석과 무대의 위치를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고, 별도의 연습실까지 함께 배치해 창작–연습–공연이 한 동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설계했다. 기존의 정형화된 무대에서 시도하기 애매했던 공연들이 이곳에서 숨을 돌리는 셈이다.
공간과 프로그램을 뒷받침해 주는 교육 기능도 있다. 세종예술아카데미는 원형 강의실과 사각형 강의실로 구성된 예술 교육 플랫폼이다. 원형 강의실은 이동식 객석으로 구성해, 강의·토크·실황 감상·소규모 퍼포먼스 등 용도에 따라 배치를 바꿀 수 있게 해 두었다. 이 공간에서는 클래식 감상 강좌부터 오페라, 미술, 건축을 다루는 인문·예술 강의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공연을 “한 번 보고 끝나는 소비”로 두지 않고, 그 뒤에 있는 배경과 문화를 천천히 공부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또
'미술·예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국립국악원] 한국 전통음악의 중심을 지켜온 국가기관의 이야기 (0) | 2025.12.08 |
|---|---|
| [예술의전당] 왜 하필 서초동 우면산 아래였을까 (0) | 2025.12.08 |
| [서울 숭례문] 국보 제1호로 불렸던 남쪽 정문 이야기 (0) | 2025.12.03 |
| [서울 독립문] 청으로부터의 ‘종속의 문’을 헐고 세운 자주독립의 상징 (0) | 2025.12.03 |
| [국립민속박물관] 한민족의 삶과 문화를 기록하는 살아있는 생활사 아카이브 (0) | 2025.1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