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예술

근현대 150년을 담아낸 국가의 기억 저장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by 뭔들쓰는 인간 2025. 12. 1.

 

서울 종로 한복판, 세종대로를 따라 걸어가다 시청과 광화문 사이의 풍경 속에서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건물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다. 주변에는 경복궁과 광화문, 세종이야기 등이 있어 역사적인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차근차근 되짚어볼 수 있는 구조로 자리한다. 이 박물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2012년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깊이와 의미는 19세기 말부터 이어지는 긴 역사와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중심으로 구성된 박물관이다. 선사·고대사를 다루는 타 박물관과 달리 이곳은 근현대사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즉, 사람들이 오늘을 살아가는 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사건과 변화,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로 전시가 이루어져 있다. 박물관의 출발은 200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현대사 전문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발표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건립위원회가 구성되어 2009년 명칭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으로 확정되었고, 2012년 3월 공식 설치 및 12월 개관에 이르렀다.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이 박물관의 역할은 상당히 넓고 깊다.

박물관의 기본 구조는 시대 흐름에 따라 4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지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국가는 어떤 배경에서 태동했고,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발전했는지 보여준다. 제1전시실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국제 질서의 변화 속에서 조선이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위기를 맞았는지 설명한다.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의 복잡한 정치적 맥락과 사회 변화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격동의 시기를 살아간 개인과 공동체의 모습, 다양한 저항 운동과 사회 변화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역사적 맥락을 느끼도록 구성되어 있다.

제2전시실에서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부터 1961년까지의 과정을 다룬다. 혼란 속에서 국가 기틀을 다져가는 과정, 6·25 전쟁의 참상과 재건 과정, 당시의 사회 분위기가 어떤 방식으로 국가 정책과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쳤는지 전시물을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전후 복구는 단순한 경제적 재건이 아니라 국민의 삶의 재설계였음을 알게 되는 공간이다.

제3전시실은 산업화와 경제 성장 중심의 1961년부터 1987년까지를 아우른다. 이 공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짧은 시간 안에 이뤄낸 경제 개발, 급격한 도시화, 생활문화 변화, 과학기술 발전 등 대한민국 사회가 세계적으로 유례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변화해 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정리되어 있다. 각종 산업 제품, 도시 건축 사진, 당시 사용된 생활 도구, 신문 자료, 광고물 등은 이 시대의 분위기를 실제로 살아본 사람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제4전시실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의 흐름을 다룬다. 민주주의의 성장, 권력 구조 변화, 국제적 위상 강화, 북한과의 관계, 세계화 시대 속 한국 문화의 확산 등 대한민국이 글로벌 국가로 도약하는 모습이 시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2002년 월드컵, K-POP의 세계 확산, IT 기술의 비약적 발전 같은 현대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도 상세히 다루고 있어 매우 현대적이고 실감 나는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기획전 또한 활발하다. 한국 사회 내 특정 사건, 개인, 산업, 문화 현상 등을 중심으로 매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한국 민주화 운동, 여성의 사회 진출, 산업 변화, 국민의 생활상 변화 등은 시대별로 새로운 관점에서 재구성되어 전시된다. 특별전은 단순 전시가 아니라 기록을 재해석하고 사회적 의미를 되짚는 학술적 성격도 갖기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는다.

어린이박물관은 이 박물관의 또 다른 특징이다. 전시물이 단순히 눈으로 보기에 그치지 않고, 어린이들이 직접 체험하고 참여하며 근현대사를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조선 말 서민의 생활 공간을 재현하거나, 일제강점기 학생들의 책걸상과 교복, 해방 이후 초기 신도시의 생활문화 장면 등은 어린이 관람객에게 생생한 경험이 된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어린이에게 친근하게 만드는 방식이 자연스럽고, 교육 효과도 높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단순한 전시 기관을 넘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시민 참여형 콘텐츠를 운영한다. 역사 강좌, 청소년 아카데미, 시민 체험 프로그램, 토크 콘서트 등은 시대적 사건을 스스로 해석하고 토론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책·자료·영상 콘텐츠를 제작해 온라인으로도 배포하며, 연구 기획 부서에서는 새로운 역사 연구와 기록 정리에 힘쓰고 있다.

박물관은 조직 체계도 상당히 체계적이다. 운영지원과, 학예 연구실, 자료관리과, 전시운영과, 교육과, 교류홍보과 등 다양한 부서가 협력하며 박물관의 기획·운영·연구·교육을 담당한다. 이는 단순히 전시물 배치와 관리에 그치지 않고 ‘국가 차원의 역사 기록과 전달’을 목표로 하는 기관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한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2018년 특정 전시에서 포로 귀환 관련 설명문 오류로 역사 왜곡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유엔군 포로와 국군 포로의 귀환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통계 수치가 부정확하게 인용되었고, 그로 인해 사회적 논쟁이 일었다. 박물관은 관련 부분을 철회하고 정정하면서 공식적으로 오류를 인정했다. 이 사건은 ‘역사를 다루는 기관이 갖춰야 할 책임감’에 대해 사회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박물관 또한 이후 전시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자리한 위치 또한 의미가 깊다. 바로 앞에는 세종대왕 동상이 있고, 광화문광장 너머에는 경복궁이 자리하며, 주변에는 국립민속박물관·청와대·세종문화회관 등이 이어져 있다. 즉, 조선 시대부터 현대까지 한국의 정치·문화 중심을 모두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지리적 환경이 만들어져 있는 셈이다. 박물관을 나온 뒤 주변을 걸으면 조선의 궁궐과 대한민국의 현재가 맞닿아 있음을 자연스럽게 체감할 수 있다.

근현대사를 기록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 선조들의 흔적이 직접 남아 있는 고대사와 달리, 근현대사는 기록과 해석의 차이로 논란이 생기기 쉽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수많은 자료와 사료 분석, 시대별 재해석을 통해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국가의 기억을 정리하고 후대까지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이 박물관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조선 말기 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 나라가 어떤 선택을 했고, 어떤 난관을 지나왔으며, 어떤 힘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조용히 말해주는 거대한 기록물이다. 전시실을 천천히 걷다 보면 과거 뉴스 화면에서만 보던 사건들이 하나씩 눈앞에 되살아나고, 어렴풋이 알았던 시대들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결국 현재 우리는 누구이며,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다. 이 질문은 단순히 지식의 영역을 넘어 정체성과 공동체 의식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전시를 모두 본 뒤에도 한동안 광화문 광장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생각에 잠기곤 한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잇는 교차점이자 현대사 교육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 수행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