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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예술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의 시간과 기억을 품은 거대한 지식의 집

by 뭔들쓰는 인간 2025. 12. 1.

 

 

출처 : 위키백과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집대성한 거대한 문화 저장소이자 연구 기관이다. 이곳은 단순히 유물을 모아두는 전시 공간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해 온 수천 년의 시간과 흔적을 한자리에 모아 깊이 있게 보여주는 문화 인프라다. 경복궁에서 시작된 작은 박물관이 오늘날 세계적인 규모의 박물관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여정은, 박물관 자체가 하나의 큰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극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겨울과 여름, 낮과 밤의 분위기는 모두 다르다. 용산가족공원을 걸어 들어서는 길부터 웅장한 건축의 규모가 드러나며, 건물 앞 연못과 조각물들은 오랜 시간을 지켜온 박물관의 품격을 더욱 강조한다. 지금의 자리에서 박물관이 문을 연 것은 2005년이지만, 기관의 뿌리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경궁에서 개관한 제실 박물관이 시초였고, 이후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거쳐 광복 이후 국립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유물이 전쟁과 정치적 혼란을 거쳐 살아남았고, 그 중 일부는 지금도 국립중앙박물관의 핵심 전시품으로 남아 있다.

광복 직후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접수한 김재원 박사가 관리한 유물들은 국립박물관의 초기 역사를 지탱했다. 이후 박물관은 여러 차례 이전을 거쳤다. 전쟁 중 부산으로 피난했던 시기, 남산과 덕수궁을 옮겨 다녔던 시기, 그리고 다시 경복궁으로 복귀했던 시기까지, 박물관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함께 끊임없이 이동했다. 이러한 이동은 단순한 이사라기보다 ‘문화유산을 지켜내려는 노력’ 그 자체였다.

1972년 박물관은 처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이라는 명칭을 갖게 된다. 당시 경복궁 북서쪽 한 전각 자리에 신축된 전용관은 이후 박물관의 전성기를 여는 첫 무대가 되었다. 이 시기에는 국내외에서 수집된 유물이나 기증품이 대거 들어오면서 소장품 규모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1980년 동원 이홍근 선생이 기증한 1만여 점의 서화·공예·도자 작품은 박물관 역사에서 가장 큰 기증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 박물관은 이러한 기증품을 바탕으로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대중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조선총독부 청사로 이전해 큰 전시 공간을 확보했지만, 1995년 청사 철거가 결정되면서 다시 임시관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는 박물관 역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결정이 지금의 용산 신축 이전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용산 미군기지 반환 부지를 활용해 새로운 국립중앙박물관을 짓자는 계획은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고, 8년이 넘는 공사를 거쳐 2005년 마침내 용산 시대가 열렸다.

서울 용산에 자리한 지금의 박물관은 그 규모부터 압도적이다. 건물 길이만 400m가 넘고, 최고층 높이는 40m가 넘는다. 내부는 지하 1층, 지상 6층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 공간만 무려 3개 층에 걸쳐 있다. 전 세계 박물관 중 면적으로는 13번째에 해당하는 규모이자 한국 최대의 박물관이다. 소장품 역시 40만 점이 넘으며, 전시되는 유물은 보존 상태를 고려해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2023년 방문객 수는 약 418만 명으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방대한 유물뿐 아니라 전시 구성의 깊이와 학술적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대표 전시실인 선사·고대관은 한반도의 구석기 시대부터 발해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다룬다. 이곳에서는 구석기인들의 도구부터 청동기 시대의 무기, 삼국시대 유물, 고구려 고분벽화, 백제 금동대향로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의 대표 유물이 시대별 서사처럼 이어진다. 고대 한반도의 문화를 처음 접하는 방문객도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구성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물관의 핵심 상징 중 하나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이다. 본래 원나라 시기 경천사에 세워졌던 이 석탑은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광복 이후 환수된 이후 박물관 내부에 보존되어 있다. 전시실 한가운데 압도적인 존재감으로 서 있는 석탑은 한국 석탑의 정교함과 미감을 극적으로 보여주며, 많은 방문객이 가장 오래 머무르는 장소 중 하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순히 역사 유물만 다루지 않는다. 불교 조각, 서화, 조각·공예, 아시아 문화유산, 정기 특별전 등 다양한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진다. 특히 어린이박물관은 체험형 중심의 교육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상설전시관과 어린이박물관은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는 점도 문화 접근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소다.

또한 2021년 이건희 회장 컬렉션 기증은 박물관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기증품은 고미술품만 2만 건이 넘는 방대한 규모로, 국보와 보물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인왕제색도》와 《월인석보》 등 한국 미술사의 중심에 놓인 작품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면서 연구와 전시 기획의 폭도 크게 넓어졌다.

오늘날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순한 전시기관을 넘어, 한국 문화와 역사 연구의 중심지이자 세계 여러 나라와의 교류를 주도하는 국제적 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 해설은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 중국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로 제공되며, 매년 수십 개의 국제 공동 전시가 개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한국인의 기억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미래 세대까지 전달하는 국가적 문화 기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을 걸으면 수천 년의 시간이 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흐르는 느낌이 든다. 유물은 가만히 놓여 있지만, 그 안에 담긴 삶과 이야기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며 관람객에게 말을 걸어온다.

백제의 향로, 신라의 황금장식, 조선의 서화, 고분에서 출토된 작은 토기 하나까지 모든 유물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조각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그 조각들을 모아 더 큰 그림을 완성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 박물관은 우리의 문화적 뿌리를 이어주는 중요한 중심지로 남을 것이다.